애경그룹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아 그룹의 상징인 애경산업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한때 생활용품·항공·화학을 아우르는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던 애경은 현재 생존을 위해 체질 개선과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업계에 따르면, 애경그룹 지주사인 AK홀딩스는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이 328.7%에 달했다. 단기차입금만 3,155억 원에 이르다.
반면, 보유 현금성 자산은 274억 원에 그쳤다. 당장 1년 이내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을 상환하기에도 빠듯한 구조다.
애경그룹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주요 사업부문들의 실적 악화다. 항공 계열사인 제주항공은 2023년 연결기준 매출 1조9,358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799억 원에 그쳤다. 전년 대비 52.9%나 급감한 수치다. 고금리·고유가·환율 불안 3중고가 항공 수익성에 직격탄을 날렸다.
애경케미칼도 석유화학 업황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고부가 제품 비중을 늘리려 했지만, 기초 소재 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수요 위축과 경쟁 심화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애경케미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약 65%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그룹 전체 현금 창출력이 급격히 악화했고, 그 여파가 지주사의 유동성 위기로 직결된 것이다.
애경그룹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1954년 창립한 모태기업 애경산업(화장품·생활용품 사업부문)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AK홀딩스(49.6%)와 애경자산관리(13.8%)가 보유한 애경산업 지분 63.38% 전량을 매각 대상으로 설정했다. 현재까지 시장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5,000억~6,000억 원 수준의 매각가가 거론되고 있다.
M&A 시장에 따르면 일부 글로벌 화장품 업체와 사모펀드(PEF)들이 인수 후보로 물밑 접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위생용품 수요 감소와 중국발 화장품 소비 둔화로 애경산업 실적이 악화된 점이 매각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애경그룹은 비주력 자산인 골프장 ‘중부CC’ 매각도 병행 추진 중이다. 업계에서는 중부CC 매각을 통해 약 1,500억~2,000억 원의 자금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애경그룹 위기의 또 다른 근본 원인으로 지배구조의 취약성이 지목된다. 애경그룹은 오너 2세 채형석 AK홀딩스 부회장을 중심으로, 비상장사인 애경자산관리가 지주사 AK홀딩스를 지배하는 ‘옥상옥 구조’를 유지해왔다.
애경자산관리는 AK홀딩스 지분 31.8%를 보유하고 있으며, 오너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개인 회사다.
특히 애경자산관리 매출의 80% 이상이 그룹 내부거래(임대수익, 관리 용역 등)로 채워져 있다는 점은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도 저촉될 소지가 있다.
AK홀딩스 이사회 구성 역시 8명 중 사외이사가 3명에 불과해 대규모 상장회사로서의 거버넌스(지배구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경영 투명성과 책임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셜밸류/경제일반]